제2화. 옆굴
여럿· 2026. 10.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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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 너머의 두드림은 규칙적이지 않았다. 세게 두 번, 그리고 손바닥으로 긁듯이 한 번.
"사람이에요."
도현이 말했다. 확인한 게 아니라 그러길 바라는 목소리였다.
상철은 대답 대신 출입문 위 CCTV 화면을 띄웠다. 흑백 화면 속에 교복 치마 위로 패딩을 입은 여자애가 문에 이마를 대고 서 있었다. 혼자였다.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다.
"열어 주세요… 제발…"
그 뒤, 화면 가장자리에서 그림자 하나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상철이 잠금장치를 풀었다. 도현이 문을 당겨 여자애를 끌어들였고, 상철이 어깨로 문을 밀어붙였다. 잠금쇠가 걸리는 순간, 바깥에서 무언가가 철문에 부딪혔다. 문틀이 울렸다.
여자애는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열일곱쯤 되어 보였다. 손에 꺼진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다친 데 있어? 물렸어?"
상철이 그녀의 팔과 목을 살폈다. 상처는 없었다.
"이름."
“…윤서하요.”
"가족은?"
서하의 입술이 떨렸다.
"차에… 있었어요. 밖에. 정체돼서 다들 휴대폰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 같이 울렸어요. 그 소리, 재난문자 소리요. 아빠가 그걸 보더니…"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제 건 배터리가 나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만…"
상철과 도현의 눈이 마주쳤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철문이 다시 울렸다. 이번엔 소리가 둘이었다. 그리고 셋이 됐다.
3시 52분.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도현이 물었다. "콘크리트 건물이잖아요. 문도 철문이고."
상철은 창문을 봤다. 방범창 없는 일반 유리창이었다. 관리소는 사람을 막으려고 지은 건물이 아니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그리고 저 안에 이천 명이 있어."
그는 모니터 벽을 가리켰다. 양양 방향 터널에 갇힌 차들. 버스와 선물 상자로 쌓은 벽. 그리고 그 벽 안쪽에서 아직 상황을 모른 채 차 안에 웅크린 사람들.
"제어반은 자동으로 돌아가. 환기팬, 조명, 다 비상전원에 물려 있어. 우리가 여기 없어도 한동안은 버텨."
그는 서랍을 열어 휴대용 무전기 두 대와 열쇠 꾸러미, 손전등을 꺼냈다. 열쇠 꾸러미에는 숫자가 적힌 노란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피난연결통로 1번부터 12번까지.
"어떻게 들어가요? 입구 쪽엔 저것들이 바글바글한데."
상철은 다른 화면을 가리켰다. 7번, 8번 화면. 서울 방향 터널이었다.
텅 비어 있었다.
귀성길 반대 방향. 서울로 올라가는 차선에는 설 전날 오후에 차가 거의 없었다. 조명 아래로 아스팔트만 3.2킬로미터 뻗어 있었다.
"저쪽 굴로 들어가서 1번 연결통로로 건너간다. 입구에서 삼백 미터. 벽 안쪽으로 바로 나와."
도현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사실을 상철보다 한 박자 늦게 알아챘다.
"주임님. 저 굴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막을 차가."
상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어반의 서울 방향 진입차단 버튼을 눌렀다. 차단기가 내려가고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차단기는 막대기 하나였다. 사람 허리 높이의 막대기.
그는 그게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눌렀다.
"뒷창문으로 나간다. 뛰어."
같은 시각. 양양 방향 터널, 서쪽 벽 안쪽.
정우는 버스 계단에 앉아 손을 내려다봤다. 소화기를 쥐었던 손가락이 아직 펴지지 않았다.
벽은 버티고 있었다. 버스, 경차,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운 선물 상자와 캐리어. 너머에서 긁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넘어오는 건 없었다. 청년 둘이 쇠파이프 대신 차량용 스틱 잠금장치를 하나씩 쥐고 틈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문제는 벽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있었다.
"저 사람, 버스에서 내보내."
누군가 말했다.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버스 뒤편을 보고 있었다. 맨 뒷좌석에 물렸던 등산복 남자가 누워 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땀범벅이었다. 그의 아내가 옆에 앉아 수건으로 팔을 누르고 있었다.
"열나는 것뿐이에요. 피를 많이 흘려서 그래요."
아내가 말했다. 누구에게라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았다.
"아까 그거 봤잖아요. 물리고 일어났잖아."
"그건 밖에 있던 사람이잖아요! 우리 남편은 아니에요!"
버스 기사가 운전석에서 몸을 돌렸다. 오만석이라고 했다. 이십 년 관광버스 운전에 이런 날은 처음이라고.
"내 차에서 싸우지들 마쇼."
사람들의 시선이 정우에게 모였다. 벽을 쌓자고 소리친 사람. 소화기를 휘두른 사람. 정우는 그 시선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결정하라는 거였다.
그는 결정하지 않았다.
"손발 묶읍시다. 본인 동의 받고. 아무 일 없으면 풀면 돼요."
남자의 아내가 정우를 노려봤다. 그러나 남자가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트렁크에서 견인 로프를 가져왔다.
4시 03분. 서울 방향 터널.
상철은 달리면서 숫자를 셌다. 백, 백오십, 이백.
텅 빈 터널 안에서 세 사람의 발소리가 천장까지 울렸다. 조명은 정상이었다. 주황빛이 일정했다. 그게 오히려 끔찍했다. 숨을 곳이 없었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입구 쪽 차단기가 넘어가는 소리. 플라스틱 막대가 아스팔트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발소리. 질질 끄는 것도 있었고, 뛰는 것도 있었다.
"뛰는 놈도 있어요!"
도현이 외쳤다.
이백오십. 오른쪽 벽에 초록색 비상구 표시등이 보였다. 사람이 뛰어가는 그림 아래 흰 글씨. 피난연결통로 1 →
상철이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 손이 떨려 꼬리표가 엉켰다. 1번. 1번이 어디 있지.
"주임님!"
서하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는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잡이가 아니라 가로로 길게 달린 밀대. 방화문이었다. 비상구는 잠겨 있지 않았다. 대피하는 쪽에서 밀면 열리게 만든 문이니까.
셋이 동시에 밀대에 몸을 던졌다.
4시 05분. 양양 방향 터널.
정우는 그 소리를 처음엔 벽 너머에서 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방향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옆쪽이었다. 터널 벽에서.
버스에서 서른 걸음 떨어진 곳에 초록색 비상구 표시가 있었다. 그 아래 회색 철문이 안쪽에서 부서질 듯 쾅쾅 울리고 있었다.
피난연결통로 1 →
정우는 그 표시를 사십 분 동안 차 안에서 보고 있었다. 한 번도 그게 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저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도.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이 굴러 나왔다. 형광 조끼를 입은 중년 남자, 젊은 남자, 그리고 교복을 입은 여자애. 맨 뒤의 젊은 남자가 몸을 돌려 문을 닫으려 했다.
문틈으로 팔 하나가 끼어 들어왔다.
정우는 이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달려가서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팔이 문틀에 끼어 꺾이는 소리가 났다. 그것은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문이 닫힐 때까지 계속 손가락을 움직였다.
문이 닫혔다. 그러나 잠기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밀면 열리는 문이었다. 양쪽 다 밀대였다. 대피용 문은 어느 쪽에서든 열려야 하니까.
"뭐든 가져와요! 문 막아!"
오만석이 버스에서 소화기 함을 뜯어 왔다. 청년들이 캐리어를 끌고 왔다. 누군가 차에서 루프백을 떼어 왔다. 정우와 형광 조끼 남자가 문에 등을 대고 버텼다. 문 너머에서 부딪히는 진동이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관리소 박상철입니다."
남자가 헐떡이며 말했다. 그는 정우를 보지 않고 터널 안쪽, 끝없이 이어진 차량 행렬을 보고 있었다.
"방송한 분이요?"
"예. 처음 거는 제 실수였습니다."
정우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밖은 어떻습니까."
상철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정우가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했다.
"옆 굴이 비어 있습니다. 서울 방향이요. 막을 차가 한 대도 없어요. 지금 저쪽 굴은 양쪽 입구가 다 열려 있습니다."
정우는 그 말의 뜻을 천천히 이해했다.
"이런 문이… 몇 개나 있습니까."
상철이 열쇠 꾸러미를 들어 보였다. 노란 꼬리표가 흔들렸다.
"이백오십 미터마다 하나. 열두 개."
정우의 머릿속에서 숫자가 계산됐다. 열두 개. 3.2킬로미터. 그리고 그의 차는 터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때 터널 안쪽, 멀리서 비명이 들렸다.
한 사람의 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터널을 따라 길게, 길게 울리며 이쪽으로 번져 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
상철이 무전기를 귀에 대고 꼬리표를 하나씩 넘겼다. 그리고 멈췄다.
“6번.”
정우는 이미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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