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터널-제1화. 귀성
여럿· 2026. 10. 2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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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전날, 오후 3시 12분.
서울양양고속도로 양양 방향, 백담1터널 안.
한정우는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이 또 늘어나는 걸 보고 핸들에서 손을 뗐다.
"아빠, 아직이야?"
뒷좌석에서 둘째가 물었다. 벌써 열한 번째였다.
"할머니 댁까지 세 시간."
"아까도 세 시간이었잖아."
맞는 말이었다.
터널 안 공기는 탁했다. 주황색 나트륨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을 따라 이어졌고, 그 아래로 브레이크등이 끝없이 붉게 깔려 있었다. 3.2킬로미터짜리 터널이었다. 들어온 지 사십 분이 지났는데 정우의 차는 겨우 중간쯤에 서 있었다.
조수석의 아내 수진이 휴대폰을 흔들었다.
"또 안 터져. 엄마한테 늦는다고 문자 보내야 하는데."
화면 위 안테나 표시가 한 칸과 없음 사이를 오갔다. 명절이라 다들 같은 짓을 하고 있겠지. 정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나중에 그는 그 순간을 수백 번 되짚게 된다.
같은 시각, 터널 서쪽 입구 옆 관리소.
박상철은 식은 컵라면을 내려놓고 모니터 벽을 올려다봤다. 화면은 열여섯 개였다. 터널 내부 CCTV 열두 대, 입출구 네 대. 전부 같은 그림이었다. 멈춘 차, 멈춘 차, 멈춘 차.
원래 이 시간엔 근무자가 한 명이었다. 설 특별교통대책 기간이라 본사에서 신입 하나를 붙여 줬다.
"주임님, 이거 몇 시에 풀려요?"
스물여섯 살 이도현이 물었다.
"안 풀려. 내일 아침까지 이래."
"와…."
그때 서쪽 입구를 비추는 4번 화면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입구 밖, 정체 행렬 맨 뒤쪽에서 사람 하나가 차 지붕 위로 올라가 있었다. 아니,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아래, 문이 열린 SUV 옆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고, 다른 누군가가 그 위에 엎드려 있었다.
"저거 싸움이죠? 명절 보복운전?"
도현이 몸을 앞으로 뺐다. 상철은 대답하지 않고 줌을 당겼다. 해상도가 깨졌지만, 엎드려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을 때 입 주위가 검게 번들거리는 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차 사이를 메우며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터널 쪽으로.
3시 14분.
정우는 처음엔 그 소리를 경적이라고 생각했다. 터널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러다 그게 비명이라는 걸 알았다. 하나가 아니었다.
뒤쪽, 입구 쪽이었다.
사이드미러에 사람들이 비쳤다. 차와 차 사이 좁은 틈으로, 갓길로, 짐도 없이 뛰어오는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맨발이었다. 넘어진 아이를 누군가 안아 들고 그대로 달렸다.
"뭐야, 불났어?"
수진이 창문을 내렸다. 연기 냄새는 없었다.
그때 천장에서 경보가 울렸다. 귀를 찢는 사이렌이었다. 터널 벽을 따라 붙은 비상등이 일제히 붉게 점멸했고, 앞쪽 천장 전광판의 글자가 바뀌었다.
[ 터널 내 비상상황 ]
정우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십오 년 전 전방 GOP에서 몸에 밴 거였다. 상황을 모를 때는 가족부터 지킨다.
"애들 안전벨트 풀지 마. 문 잠가."
관리소.
상철의 손이 제어반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몇 년 동안 훈련으로만 눌러 본 버튼들이었다.
진입차단, 서측. 입구 차단기가 내려가고 진입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비상경보, 전 구간.
"주임님, 매뉴얼요! 화재 매뉴얼대로 방송해요?"
도현이 바인더를 펼쳐 들고 있었다. 손이 떨려 페이지가 넘어가질 않았다.
“……해.”
상철 자신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저게 뭔지 모르니까. 매뉴얼에는 화재, 교통사고, 위험물 누출밖에 없었다.
도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 터널 이용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터널 내 비상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차량을 정차하고 키를 꽂아 둔 채, 가까운 출구 방향으로 신속히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
방송이 3.2킬로미터 터널을 따라 메아리쳤다.
상철은 4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입구 차단기 너머에서 뛰어오던 사람 하나가 뒤에서 덮쳐졌다. 쓰러진 사람 위로 둘, 셋이 엉겨 붙었다. 십 초도 안 돼서 처음 덮쳤던 놈은 다시 일어나 다음 사람을 쫓아갔다.
그리고 쓰러졌던 사람도 일어났다.
"방송 꺼."
"네?"
"꺼!"
3시 16분.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차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정우 앞의 은색 세단에서 노부부가 내렸다. 그 앞 차에서도, 반대편 차로에서도 사람들이 내렸다. 매뉴얼은 정확히 작동했다. 사람들은 차를 두고 가장 가까운 출구로 걷기 시작했다.
입구 쪽으로.
정우는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나가지 마세요! 그쪽에서 사람들 도망쳐 오는 거 안 보여요?"
노부부가 돌아봤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방송이 다시 켜졌다. 이번엔 다른 목소리였다. 숨이 찬 중년 남자의 목소리.
[ 정정합니다. 대피하지 마십시오. 반복합니다,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터널 밖이 더 위험합니다. 차 안으로 돌아가십시오.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말.
[ 서쪽 입구 근처에 계신 분들, 지금 입구를 막아야 합니다. 대형 차량 운전하시는 분, 도와주십시오. ]
정우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여보."
수진이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도 같은 걸 보고 있었다. 사이드미러 속, 입구 쪽 끝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뛰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그러나 멈추지 않고.
"애들 데리고 차 안에 있어. 문 절대 열지 마."
"당신 어디 가는데."
"막으러."
3시 19분. 서쪽 입구에서 이백 미터 지점.
정우가 도착했을 때 이미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관광버스 운전석에서 오십 대 기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이거 돌리라고? 여기서? 차가 꽉 찼는데!"
"사선으로만 걸쳐요!" 정우가 외쳤다. "완전히 막을 필요 없어요. 차로 두 개만 대각선으로!"
"뒤차 박는다니까!"
"박으세요!"
버스 기사가 정우를 한 번 쳐다봤다. 그리고 기어를 넣었다.
굉음이 터졌다. 버스 앞범퍼가 옆 차로 승용차의 옆구리를 밀어붙였고, 유리가 깨졌다. 버스가 비스듬히 차로를 가로질렀다. 갓길 쪽에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틈이 남았다.
"저기! 저 틈!"
누군가 외쳤다. 정우는 주변을 둘러봤다. 문이 열린 채 비어 있는 경차 한 대가 보였다.
"이거 밉시다! 다섯 명!"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둘,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자, 아이 엄마 하나. 경차가 밀리며 틈을 메웠다. 완벽하진 않았다. 바퀴 아래로, 범퍼 위로, 사람이 기어 넘어올 공간은 여전히 있었다.
그리고 그 틈으로 첫 번째가 들어왔다.
등산복 남자가 먼저 봤다.
"저, 저 사람 다쳤어요. 이봐요, 괜찮—"
그것이 남자의 팔을 물었다.
정우는 생각하지 않았다. 버스 옆에 떨어진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한 번, 두 번. 그것은 쓰러지지 않았다. 세 번째에 머리가 꺾였고, 그제야 멈췄다.
등산복 남자는 팔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흘렀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정우는 숨을 고르며 틈을 봤다. 그 너머, 입구 밖 햇빛 속에 그림자 수십 개가 서 있었다.
"트렁크!" 그가 외쳤다. "트렁크에 있는 거 전부 꺼내요! 상자든 짐이든 선물세트든 뭐든! 저 틈 메워요!"
사람들이 흩어졌다.
한우세트 상자가 날아왔다. 배 상자, 캐리어, 아이 카시트가 뒤따랐다. 누군가는 스팸세트 박스 세 개를 한꺼번에 안고 뛰어왔다.
설 선물이 벽이 됐다.
3시 41분. 관리소.
상철은 서쪽 입구 화면을 보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버스와 경차와 선물 상자로 쌓은 엉성한 벽 너머에서 그것들이 부딪히고 긁어 댔다. 그러나 넘어오지는 못했다.
"동쪽은요?"
도현이 물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상철은 동쪽 출구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출구 쪽은 정체가 터널 밖까지 이어져 있지 않았다. 차가 끊긴 빈 도로였다. 아직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은.
"방송 다시 켜. 동쪽 출구 근처 사람들한테."
상철은 마이크를 잡기 전에 휴대폰을 꺼냈다. 본사, 112, 119. 전부 같은 신호음이었다. 연결 안 됨.
관리소 구석의 작은 TV가 깜빡였다. 뉴스 속보 자막이 흘러가고 있었다.
[ 재난문자 발송 직후 전국 고속도로 곳곳에서— ]
자막이 거기서 멈추더니 화면이 꺼졌다.
상철은 자기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이 관리소는 산자락에 붙어 있어서 원래 신호가 약했다. 3년 동안 늘 불평하던 일이었다.
재난문자는 오지 않았다.
그때, 관리소 철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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